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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사랑의 슬픔, 정시(情詩)의 세계 - 9. 내가 죽고 그대가...
산책, 사랑의 슬픔, 정시(情詩)의 세계 - 9. 내가 죽고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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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①
정시(情詩) 가운데서도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정네들이 부르는 노래이다. 평생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이기에 가슴에 저미는 아픔이 유난스럽다. 이런 시를 망자를 애도하는 시라 하여 도망시(悼亡詩)라고도 하는데 몇 작품을 함께 보기로 하자.
嫁日衣裳半是新 시집 올 제 해온 옷이 반 너머 그대로니 開箱點檢益傷神 궤를 열고 살펴보다 더욱 맘을 상하네 . 平生玩好俱資送 평생 좋아하던 것을 함께 담아 보내서 一任空山化作塵 빈 산에 다 맡기니 티끌되어 스러지라 .
이계(李烓)의 「부인만(婦人挽)」이다.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버리고, 땅에 묻으려고 아내의 옷가지를 뒤적이다 목이 메이고 만 노래다. 아내의 옷상자를 꺼내어보았다. 시집 올 때 지어온 옷이 반 너머 그대로다. 아껴 입느라고 그랬던가. 겨우 이렇게 살다가고 말 것을. 시집 올 때 옷이 반 너머 그대로라고 했으니 그녀가 아직 청춘의 나이임을 알 수 있다.
시집 올 때 한 벌 한 벌 새로 옷을 지을 때야 어찌 이것이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관 속에 들어가 주인과 함께 흙 속에 묻히고 말 것을 생각이나 했으랴. 그밖에 노리개와 패물이 모두 만져보매 눈물겹고, 들여다보매 생시의 모습이 훤히 떠올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모두 싸서 그녀의 관에 함께 묻었다. 아끼어 입지 않고 장롱 깊이 넣어둔 옷이 죽음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부질없이 관의 빈 곳을 채워 주인과 함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죽은 아내의 옷과 아끼던 물건들을 모두 함께 관 속에 넣은 뜻은 그녀와의 다정했던 기억마저 아내와 함께 떠나보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날 다정했던 사랑의 기억이야 어디 땅에 묻는다고 잊혀지겠는가.
聊將月老訴冥府 월하노인 통하여 저승에 하소연해 來世夫妻易地爲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 我死君生千里外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有此心悲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
김정희 (金正喜)의 「 배소만처상 (配所輓妻喪)」이다. 이 시는 추사가 만년 제주도에 유배 갔을 당시 지은 시이다. 절해고도(絶海孤島) 제주도에서 실의의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늙고 병든 노정객에게 아내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 오랜 세월 부부의 인연으로 지냈던 나날들. 자신의 귀양 소식에 아내는 얼마나 낙담하고 절망했던가. 끝내 그 절망을 지우지 못하고 아내는 그렇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돌아보면 예술도 명예도 덧없는 것이었다. 정작 평생을 함께 보낸 아내의 죽음에 가서 곡 한 번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는 기가 막히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였다.
첫 구에서는 월하노인에게 부탁해서 이 기막힌 심정을 저승에 하소연 하겠노라 했다. 월하노인은 중매의 신이다. 전생에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을 맺어 주어 현생에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가 훌쩍 세상을 떠나버린 지금엔 백년해로의 언약을 저버린 그녀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월하노인에게 내세엔 부부를 바꾸어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하겠다 했다. 왜. 내세에는 삶과 죽음을 바꾸어 지금의 이 기가 막힌 심정을 그대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이는 그렇듯 훌쩍 떠나면 그 뿐이겠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하염없는 슬픔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옛 시조에도 위 시와 비슷한 작품이 있다.
우리 둘이 후생(後生)하여 네나되고 내너되어
내너 그려 긋던 애를 너도 날그려 긋쳐보렴
평생에 내 설워하던줄을 돌려볼가 하노라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담장가의 발자욱
2. 야릇한 마음 ①
3. 야릇한 마음 ②
4. 보름달 같은 님
5. 진 꽃잎 볼 적마다 ①
6. 진 꽃잎 볼 적마다 ②
7. 까치가 우는 아침 ①
8. 까치가 우는 아침 ②
9.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①
10.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②
11.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았더라면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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