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의 대표적 작곡가

현악기의 대표적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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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기의 대표적 작곡가

1. 니콜로 파가니니 (Niccolo Paganini, 1782-1840)

거장시대의 계기를 만든 19세기의 대표적인 명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이탈리아인. 십대 초반에 이미 전통적인 주법을 모두 터득하였고, 17세때부터 연주여행을 시작하여 순식간에 명성과 부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박과 방탕으로 마침내 자기가 애용하던 바이얼린까지 내놓게 된 그는 한동안 연주활동을 중지하기도 했습니다. 1804년 고향 제노바로 돌아가 재출발, 예전보다도 더 성공을 거두어 그 묘기는 이탈리아 국외로 전해져 갔습니다. 28년 최초의 국외 연주여행을 떠나 빈, 베를린, 폴란드, 파리, 영국의 각지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32년에 귀국한 후에는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왕복하였습니다. 한편 작곡에도 손을 대어 "24개의 카프리치오", 3곡의 "바이얼린 협주곡"등을 완성했는데 모두 바이얼린의 명인 솜씨를 최고도로 발휘시키려고 한 난이도가 높은 곡입니다. 파가니니의 초절적인 기교는 많은 작곡가에게 자극을 주어 리스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은 그의 선율을 이용하여 피아노의 난곡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자기의 연주기법을 공개하기를 거부하여 극단적인 비밀주의를 취했고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2. 요제프 요아힘 (Joseph Joachim, 1831-1907)

헝가리 출신으로서 시포어, 다비드의 계보를 이어받아 19세기 후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소년시절부터 연주활동에 들어가 당시 인기가 없었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소개에 힘써서 그 진가를 인정케 만든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슈만 부부나 브람스와는 특히 절친하게 사귀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곡에 적극적인 조언을 주었고 카덴차를 자작하여 그 초연을 담당했습니다. 1869년에는 신설된 베를린 국립음악고등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취임,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한편, 역사적인 명사중주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요아힘 현악4중주단을 경설, 실내악 연주에 새 국면을 개척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극히 순수해서 고도의 예술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며 문하생 중에는 아우어, 후바이 등 대바이올리니스트를 배출했습니다. 그는 작곡도 잘 해서 3곡의 바어올린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이 있는데 전기한 브람스 협주곡의 카덴차와 "헝가리 무곡"의 바이올린 편곡, 베토벤 협주곡의 카덴차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3. 파블로 사라사테 (Pablo de Sarasate, 1844-1908)

파가니니가 다시 나타났다고까지 했었던 스페인의 명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렸고 10세때에는 이미 궁정에서 연주를 할 정도의 솜씨였습니다. 이때 이사벨 여왕으로부터 기증받은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그의 평생의 애기가 되었습니다. 1856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 바이올린을 알라르, 화성학을 르베르에게서 배웠습니다. 졸업 후에는 연주 활동에 전념, 그 연주 여행은 유럽 각지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 미국, 아프리카, 러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라사테의 연주 매력은 감미로운 음색과 그야말로 거장다운 초인적인 기교로서 각지에서 큰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작곡가들에게도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 2번",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를 위해 쓰여졌습니다. 사라사테는 바이올린 소품의 작곡에도 독특한 맛을 나타내어 특히 대표작 "지고이네르바이젠"이나 스페인 무곡, "안달루시아의 로멘스" 등은 일반 가정에서도 널리 애호되고 있습니다.

4. 레오폴드 아우어 (Leopold Auer, 1845-1940)

헝가리 출신의 명바이올리니스트로서 교육가이기도 합니다. 요아힘에게서 사사받은 뒤에 각지 관현악단의 콘서트 마스트로 있다가 1868년 페테르부르그의 궁정 독주자로서 러시아에 초빙되었습니다. 그 뒤 화려한 연주활동에 들어감과 동시에 페테르부르그 음악원 교수로서 많은 명 바이올리니스트를 양성했습니다. 나중에 러시아에 귀화해서 귀족으로 책봉되었으나 만년에는 활동무대를 뉴욕으로 옮겼습니다. 아우어의 문하에는 하이페츠, 엘만, 짐발리스트, 자이델 등 쟁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5. 프리츠 크라이슬러 (Fritz Kreisler, 1875-1962)

금세기 전반에 활약한 오스트리아의 명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빈에서 태어나 아우어 등에게 사사받았으며, 이른바 3대 협주곡이나 벤토벤 소나타 전곡에 최고의 해석을 나타냈고 카덴차도 자작했습니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 등의 작곡가로서도 알려졌고 레코드로 남아 있는 이들 소품의 자연(스스로 한 연주)은 그야말로 절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얻어 그곳에서 영면했습니다. 크라이슬러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약한 프랑스의 잭 티보(1880-1953)도 잊을 수 없는 명바이올리니스트의 한 사람이며 순회 공연 중 비행기 사고로 죽었습니다.

6. 요제프 시게티 (Joseph Szigeti, 1892-1973)

현대적인 바이올린 연주 스타일의 개척자로서 하이페츠와 더불어 잊을 수 없는 명연주가입니다. 시게티는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데뷔했고 영국, 스위스, 미국에서 활약했습니다. 19세기의 기예적인 거장 스타일에 정면적으로 반대, 작품 그 자체를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이른바 즉물주의 연주스타일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바이올린다운 감미로운 음색을 시게티의 연주에서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음악적인 정신의 순수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서 듣는 사람을 깊이 감동시킵니다. 바흐 외에 바르토크와 프로코피에프 등의 현대 작품을 적극적으로 채택한 것도 큰 공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7.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1901-1987)

러시아에서 태어나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하이페츠는 시게티와는 대조적으로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해주셔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하이페츠의 기교는 정확하기 이를 데 없고 19세기적인 거장 스타일을 초월한 현대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점에서 시게티와 공통된 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곡이라도 완벽하게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오늘날에는 적지 않지만 그 선구자는 하이페츠였다고 해주셔도 좋을 것입니다. 아우어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하이페츠 다음 세대의 중요한 바이올리니스트로는 밝고 풍부한 음색과 라틴적 서정성의 소유자인 프랑스의 지노 프랑체스카티(1905- ),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소련에서 갑자기 나타나 전세계를 놀라게 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우선 들 수 있을 것입니다.

8.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1876-1973)

"첼로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태생의 거장입니다. 현대 첼로 주법의 완성자이며 또한 코르토, 티보와 더불어 불후의 명트리오 카잘스 3중주단을 결성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연주는 신품이라 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만년에는 푸에르토리코에 살며 매년 카잘스 음악회를 개최, 지휘자로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9. 그 외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

그 외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로서는 미국의 예후디 메뉴힌(Yehudi Menuhin, 1916- ), 폴란드 출신의 헬릭 셰링(Henryk Szeryng, 1921- ), 미국의 아이작 스턴(Isaac Stern, 1920- ), 체코 출신의 요제프 수크(Josef Suk, 1929- ), 이스라엘 출신의 이작 펄만(Itzhak Perlman, 1945- ), 핀카스 주커만(Pinchas Zukerman, 1948- ), 한국의 정경화 등이 있습니다. 카잘스를 잇는 유명한 첼리스트로는 스페인 출신의 가스파르 카사도(Gaspar Cassado, 1897-1966), 우크라이나 출신이면서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Gregor Piatigorsky, 1903-1976), "첼로의 왕자"라 불리는 프랑스의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urnier, 1906-1985), 더욱 젊은 세대로서는 프랑스의 파울 토르틀리에(Paul Tortelier, 1914-1990), 마우리체 장드롱(Maurice Gendron, 1920-1990), 헝가리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1924- ),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출신으로 지휘자로도 활동한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1927- ) 등이 현대의 첼리스트를 대표하는 명수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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