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마주하지 않으려는 아들 문제 사례

부모와 마주하지 않으려는 아들 문제 사례

35살 외아들과의 갈등

35살 외아들 문제로 저를 찾아온 어머니가

애절한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제 아들이 애처로워서 그냥 볼 수가 없습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그 어려운 회사를

들어가고 나서도, 그만두고 다시 직장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이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정말 착한 녀석인데 남편과는

마주하지도 않으려고 하고

방에서 종일 게임만 합니다.”

공부 잘하고 착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답답한 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 하나 있는 게 그 모양입니다.

저는 못 먹고 못 입고 자랐지만,

아들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키웠습니다

저는 꿈도 못 꿔본 유학도 보내고 원하는 건

다 해줬습니다. 말 잘 듣고 착했던 놈인데

요즘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뭐가 아쉬워서 저러는지 배가 불러서 저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아버지가 자라온 세월

저도 이 부부의 이야기를

십분 인정하고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들이 아버지와 마주하지도 않으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자식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모의 민낯을 봐야 합니다.

저는 남편 분이 자라온 세월이 궁금했는데요.

여러 번의 만남 끝에서야 남편 분이 깊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속내를 어렵게 털어놨습니다.

“저는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평생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묵묵하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제 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했는데

어머니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가슴앓이가 심한 와중에도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억척스럽게 식당일을 했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신문배달도 하고 청소, 배달

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동생들을 가르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가 부모님에게는 보람이었습니다”

비록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버지를 뒀지만

아버지의 자식들 중에 제일 빛났으며

체면을 중요시하는 아버지에게

제일 인정받는 큰아들로서

존재감을 잃지 않았고 그로 인해 한 맺힌 어머니의

자존심까지도 본인이 회복시켰다는 자부심을

이분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현재 아들을 봤을 때는

너무나 기막히고 한심한 겁니다.

자신과 달리 고생 한 번 없이 살아온 아들이

지금 이런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대부분 50대 후반 이후의 남성분들의 삶은

이와 유사한 인생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한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때 한국 사회가 그러했습니다.

가난과 어려운 환경을 뚫고 자수성가 한 얘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고 많았습니다.

정말 고생한 세대죠.

그래서 그런지 내가 겪은 고생 기준을 갖고

상대적으로 자녀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던 아내는 자신에게도

아들에게도 남편은 독단적이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호소했습니다.

“남편은 완벽주의자에 늘 지적하고 명령하는 사람이라

대화가 되는 건 생각도 못 합니다.

아들이 짖눌린 겁니다.

뭐 하나 잘했다는 칭찬은 없고

늘 못마땅해 하고 지적하고

다 자기 덕분이고 가족들을 못 살게 구는데

사람이 질려 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버지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고 해서

아들에게 내 삶을 기준으로 해서 못 마땅해하고

지적하고 강요를 한다는 건 아들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다른 세계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하거나

아버지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버지에게 못난 아들이라는

자괴감만 접수하게 됩니다.

자기 주장이 없는 착함

이 부부는 평소에 아들이 착했다고 강조했는데요.

착하다는 것도 여러 내용이 있습니다.

자기 주관이 있고 타인에 대한

이타심으로 호의적인 착함이 있는 것에 반해,

그다지 자신감이 없고 갈등이 싫어서

자기주장이 없는 착함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후자에 해당을 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듯이 아들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해당을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아들이 성인이어서 부모님 탓만을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가 연합하지 못해 왔던 문제,

권위적인 가정에서 가부장 중심의 생활이 연속되면서

그 안의 가족 개개인의 존재감이 묻혔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부부관계가 풀어져야

아들을 더 수월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들은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철회하며 움츠러들어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아버지를 피하는 행동 자체를 보는

다른 관점의 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들은 35살이 되었지만

심정적으로는 초등학생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간단히 얘기해서

내 아버지한테도 내 생각과 감정이 수용되지 않고

경험이 없는데 사회에 나가 동료 직장 선후배에게

자신감이 있을까요?

지금이라도 아들을 탓하는 것을 멈추고

누구보다 괴로울 아들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아들을 위해서 아버지가 먼저 용기를 내서

가장 솔직해져야 합니다.

이제라도 정말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가 되어보는 겁니다.

아버지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커서 전투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는 진심을 전달해야겠습니다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오히려 아버지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대체하며

지금껏 살아온 자신이었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나는 그런 힘든 시간들을 다 이겨냈는데

너는 부족한게 없는데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몰아쳤던 것은 상처받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래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여린 속내

저는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일수록

상처 받은 여린 속내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외유내강을 할 수 없어 외강내유로 사는

슬픈 상황을 인정하고 외강을 내려놓는 게

아버지 스스로를 위하는 길입니다.

사실 못난 자녀는 없습니다. 못난 나를 가리는

못난 내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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