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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쪽의 비극
당한 쪽의 비극
최근 책으로만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지루하기도 하고 집중도 잘 안돼서 예전에 재밌게 본 일본 드라마가 생각나서 듣기 연습도 할 겸 다시 볼까 하다가 봤던 거 다시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다른 거 없나 찾아보다가 평점도 좋고 비교적 최신작이길래 아무 생각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제목이랑 포스터만 봐도 내용은 짐작이 됐지만 1화를 보던 중 끊고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더 볼지 말지
결론은 끝까지 봤고 아쉽게도 내가 기대했던 결말은 아니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 유행했던 걸로 아는데 사실 불륜에 관한 드라마가 한두 개도 아니고, 불륜을 당한 적도 한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이 드라마는 보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리고 메스꺼움이 몰려왔다. 나는 예전부터 바람을 피우고 불륜을 저지르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대체 왜 바람을 피우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이 옛날처럼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분명 본인들이 선택한 연애, 결혼인데, 당당하게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면 될걸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까란 생각을 잠깐 했었다. 솔직히 사람 감정이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란 감정도 결국엔 옅어지고 흐릿해진단 걸 누구나 경험해봤을 텐데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면 처음이야 비난을 조금 받겠지만 사실 아무 문제없지 않은가? 동화나 옛이야기에 나올법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요즘 같은 자유연애 시대에 가당키나 할까? 바람피우는 심리야 인터넷에 검색만 해 봐도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하나 감도 안 잡힐 정도로 많고, 바람을 피우는 심리에 관한 연구도 한두 개가 아니다. 사실 바람을 피우는 이유야 한두개가 아니겠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한두개가 아니듯. 그저 본능에 진걸 포장하기 위한 변명들에 불과하지 않다 생각한다.
나는 사실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사랑'을,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안 한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사랑해'라는 말이야 백번이고 천 번이고 하겠지만 '사랑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상대를 기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의식 중에 거부 반응이 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만약 저 남자 주인공이 나였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했을까 생각해 봤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퍼붓고 내가 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해서 심각한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예전이 아닌 지금의 나라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줬을 것 같다. 용서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니까, 호르몬의 장난에 놀아나서 평생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살아갈 텐데 그것만큼 불쌍한 삶이 또 있을까
언젠가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추억이란 머릿속에 정원사가 있어서 나쁜 기억은 다 잘라내고 좋은 기억만 남겨서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나무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젠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친구가 이별의 순간에 나에게 해줬던 말들은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별을 직감 했을 때 나에게 보낸 조롱 섞인 비웃음도 몇 년뒤 다시 연락을 했을 때 나에게 했던 것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 자기가 정말 나쁜 짓을 했다는걸 깨달았다는 담담함이 담긴 메일도.
사실 나도 엄청 깨끗하게 산건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었고 인간으로써 해선 안될 짓도 많이 했다. 그저 내가 저지른 일들이 나에게 다시 되돌아와 "아.. 그때 상대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이런 느낌으로 반성 하는거지 업보니 인과응보니 그런 말들 믿진 않지만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건 나를 포함한 짐승같은 인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려는 멀쩡한 사람들 꼬셔서 정신병자 만들고 괴물로 안키워냈으면 좋겠다.
아직도 추억이라는 나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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