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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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직 소방관인 한 남자가 지난 13년 동안 겪어온 처절한 현장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살려

야 했던 쓰라리고 아픈 지난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들춰낸 날것 그대로의 글이다. 덤덤히 넣어 두

었던 지난날은 지금에 글로 만들어지며 저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써야 했고, 눈물범벅이

된 책은 결국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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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ort Summary

이 책은 현직 소방관인 한 남자가 지난 13년 동안 겪어온 처절한 현장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살려야

했던 쓰라리고 아픈 지난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들춰낸 날것 그대로의 글이다. 잊으려고 했고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날의 기억들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저자의 기억에 남아있었다.

엉켜진 시간과 공간을 들춰내어 정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덤덤히 넣어 두었던 지난날은 지금에

글로 만들어지며 저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써야 했고, 눈물범벅이 된 책은 결국 만들어졌다.

살린 사람보다 살리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던 삶과 죽음의 현장은 처음에는 고통으로 다가왔지만 곧

저자의 삶을 치유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저자는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누군가에

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을. 결국 이 글은 삶을 치유하는 소생의 글이다. 슬픔과 회한이 아니

라 용기와 다짐의 책이다. 또한, 지금의 세상에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이다.

▣ 차례

1장 소방관이 되다

전역(轉役) / 먹고살아야 한다! / 4전 5기 / 첫 근무지 부산진 구조대 / 주황색 제복의 무게 / 실전 감각

2장 잊히지 않는 기억

눈물이 마르지 않던 날 / 당신이 잠든 사이 / 이안류(離岸流) / 살아있는 모든 것들 / 두 번 살다 / 산

속의 추격전 / 불 속의 어린아이 / 오늘의 나를 만든 소방학교

3장 절규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살아야 한다 / 죽으려는 자, 살리려는 자 / 부부의 연(緣) / 아버지와 산불 그리고 의용소방대 / 닫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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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천흥이 형 / 사랑을 죽이다 / 외로운 죽음

4장 내 가족, 나의 동료

소방관의 아내 / 엄마와 구급차 / 동료들 / 리더의 자리 /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 / 할리우드 키드 / 나

의 영웅 김범석 / 형제애(brotherhood) / 당신의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 하늘의 별이 된 소방관들 / 여

자, 엄마 그리고 구급대원

5장 당신의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생의 마지막 날 / 후천적 장애로 살아내는 사람들 / 이별하지 않으려 사투를 한다 / 낮은 곳을 바라

보라 / 소방관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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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윤 지음

1장 소방관이 되다

주황색 제복의 무게

주황색이 주는 의미: 소방관의 출동복(기동복 또는 활동복이라고 한다)은 주황색이다. 주황색의 의미가

경고나 위험이니 소방관에게 어울릴 만한 색이다. 또 눈에 잘 띄기도 하여 시민들이 현장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식별하기도 좋다. 우리는 기동복을 ‘당근복’이라고 불렀다. 색깔이 딱 당근색이니 이보다

잘 어울리는 별칭이 없을 것 같다.

“당근복 다 세탁했냐?”

구조대 막내 시절, 선배들은 당근복을 세탁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볕이 잘 드는 구조대 옥상은

항상 주황색 당근복이 빨랫줄에 길게 줄지어 널려 있었다. 그런데 당근복의 색깔이 다 같지는 않았다.

주황색 물이 다 빠져 희끄무레한 살색으로 변해버린 옷도 있었다. 나는 지급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옷이라 짙은 주황색이 선명한 당근복을 입었다.

당근복은 늘 때가 타 있었다. 화재 현장의 그을음은 한번 배면 몇 번을 세탁해도 잘 빠지지 않았다. 거

기에 소위 ‘불 냄새’가 찌들어 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는 차량 기름이 당근복에 튀어 잘 지워지지

않았다. 요구조자의 피가 튀기도 하고 동물구조를 하다 보면 동물의 배설물이나 털이 묻기도 했다. 당

근복은 구조대원의 전투복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당근복을 입고 있으면 묘한 사명감이 솟아오른다. 동료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일한다는

것은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일사불란해야 함을 의미한다. 생명을 구하는 공동의 작업에 중요

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20여 년을 근무한 베테랑 팀장님부터 이제 갓

들어온 나 같은 막내 구조대원까지 함께 몸에 걸치고 있는 주황색 옷의 통일성은 서로의 위험을 나눠

갖고, 사지에서 자신의 생명을 각자에게 의지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오래되어 색이 바래졌더라도, 그

을음과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더라도, 빠지지 않는 핏물에 절어 있더라도 내가 입은 당근복이 주는 힘

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 배우다: 주차용 승강기에서 승용차가 추락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구조대

와 가까운 전포동 인근 외제 차 정비 센터였다. 신고내용으로는 차량이 3층에서 1층 아래로 떨어져 있

다고 했다.

3층에 도착해보니 승강기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가지고 간 랜턴으로 아래를 비췄다. 승용차 한 대가

뒤집혀 있었다. 모두 아연실색했다. 운전석 옆에 요구조자가 쓰러져 있었는데 시뻘건 피가 차량용 승

강기 철판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로프 꺼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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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반장님은 두말없이 구조용 로프를 승강기 문 앞 벽기둥에 설치했다. 나는 배운 대로 구조용 안전

벨트를 착용하고 3층에서 차량이 추락해 있는 1층 바닥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8자 하강기에 로프를

걸고, 엉덩이에 무게를 실은 다음 한 발씩 벽을 디디며 시커먼 주차타워 아래로 내려갔다.

“괜찮으세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가선 요구조자의 머리에서는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신음하고 있는 요구조자

의 몸을 뒤집었다. 순간 나의 동공이 커졌다. 팀장님이 위에서 비추는 랜턴 빛이 요구조자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요구조자의 왼쪽 눈썹 위부터 정수리 부근까지 살가죽이 다 벗겨져 있었다. 허연 머리뼈

가 드러나 있었고 머리뼈는 벌건 피로 번들거렸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치며 머리 가죽이 뒤로 밀릴

만큼 큰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팀장님과 기관원 반장님은 요구조자를 옮겨 싣는 들것을 즉시 내려줬다. 나는 들것을 받기 위해 상체

를 세웠다. 그때였다. 바닥의 흥건한 피를 밟고 미끄러졌고 순식간에 무게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지만, 무릎 주변은 요구조자의 피로 물들었다.

“정신 안 차려!”

구조반장님은 작지만 강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다시 일어나서 들것을 받아 요구조자를 옮겨 실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결착을 하려는 찰나였다. 요구조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와중에 희미하게나

마 의식이 있던 요구조자의 동공이 커졌다. 나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요구조자의 휴

대전화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기요. 우리 오빠 괜찮아요? 차가 높은 데서 떨어졌다고만 하고 전화를 끊어서요. 괜찮은 거죠?”

여자친구인 듯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마른 침만 삼켰다.

“저기, 머리를 많이 다치신 것 같아요. 머리 가죽이…….”

순간 선배가 전화를 빠르게 뺏었다.

“남자친구가 다치긴 했는데 괜찮을 겁니다. OO 병원으로 갈 거 같으니 일단 그쪽으로 와주십시오.”

선배는 전화를 끊고 다시 들것에 로프를 결착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작업을 거들었다. 들것

을 위로 끌어올리고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에게 요구조자를 인계했다. 그렇게 구조작업은 마

무리되었다.

구조대원으로 거듭나다: “이놈아, 가족이나 친구가 걱정하는데 뭘 그렇게 자세히 설명을 하노? 그리고

구조작업 급한데 전화는 뭐 하러 받노? 다음부터는 정신 단디 차리거래이.”

아니나 다를까 선배는 아까 전화 통화를 하던 나의 행동을 지적했다. 선배의 말이 옳다. 가족이나 지

인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구조대원이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다. 요구조자의

상태를 설명할 시간에 신속하게 구조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선배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나를 질책했

지만, 말의 무게는 무섭도록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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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현장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오로지 내가 할 일은 안전하게 구조하

는 것이다. 나의 오감은 그 일에만 집중되어야 했고, 정신적, 육체적 본능으로 자리 잡아야 했다. 벗겨

진 살가죽이나 흘러내린 핏물에 정신이 흐려지고 육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출동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니 당근복은 피와 기름때로 물들어 있었다. 피는 요구조자를 구조할 때

묻었을 것이고, 기름때는 주차타워에서 로프로 내려가며 벽면 어딘가에서 묻었을 것이다. 당장 갈아입

고 싶었지만 잠시나마 피 묻은 제복을 바라보았다.

“이제 구조대원 같네. 얼른 갈아입어라. 보기 파이다(안 좋다).”

조금 전까지 나를 꾸중했던 선배가 당근복을 보고 한 마디 했다. 머쓱했지만 그렇게 나는 구조대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이 내 옷을 물들일 피와 기름때를 생각하지 못한 채로.

2장 잊히지 않는 기억

이안류(離岸流)

해수욕장 파견근무: 부산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해양도시다.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인 해운대

를 비롯한 광안리, 송정, 송도, 다대포, 일광, 임랑 등 7개의 해수욕장이 도시 전체의 절반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1년 내내 바다를 보기 위해 바다를 찾는다.

이런 해양 대도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부산 소방의 가장 큰 연중 임무는 해수욕장 수상구조대다. 앞서

얘기한 7개의 해수욕장 개장 기간(6월 초~ 8월 말)에 소방관을 해수욕장에 파견하여 안전근무를 하게

한다. 나 역시 뜨거운 여름 그곳에서 파견근무하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 정중앙에 119 수상구조대의 CP(지휘소)가 있다. 소방관들은 바다의 깊은 곳까

지 피서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1차로 약 100여 미터, 2차로 약 200여 미터의 가이드라인을 설치해

놓고, 그 이상은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런 제한선 안에서 해수욕을 즐긴다면 특별한 사고는 일어나

지 않는다.

가족 단위 피서객 중에 어린아이들도 많이 있는데 요즘은 구명조끼나 튜브와 같은 부력용품을 착용 또

는 휴대한다. 하지만 강과 계곡과 다르게 바다는 때로 파도가 피서객들을 위협한다. 그중에서 ‘이안류’

라는 해류 현상이 있다.

해운대는 세계적으로 이안류가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안류는 해안으로 밀려왔던 파도가

해저지형의 영향으로 빠르게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예측이 어렵고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대

처가 쉽지 않다. 해안가에 놀고 있던 인파가 순식간에 먼 바다로 빠르게 밀려 나간다. 119 수상구조대

파견 근무자들은 이안류 발생에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떠내려가는 사람들: 늦은 오후였다. 7월의 마지막 날 소위 ‘극성수기’의 해운대는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이다. CP에서 내려다보이는 백사장은 흰 모래는 보이지 않고, 까만 사람 머리와 형형색색의 피서 용

품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나는 근무를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에어컨 아래 몸을 눕혔다. 후배가 가

져다준 사과 한 조각의 달콤함에 취했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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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류! 이안류!”

꿈 속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이안류라는 소리에 나는 처음에 설마했다. CP 내부에 설치된 이안류

감시시스템의 오늘 아침 분석으로는 이안류 발생확률이 30%도 되지 않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꿈

도 참 현실적이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몸을 반대로 뉘며 계속 잠을 청했다.

“형님!! 이안류! 어서 일어나요!”

후배가 내 몸을 흔들며 깨우자 그때야 나는 눈을 떴다. 직원들 모두가 허겁지겁 CP 밖으로 뛰어나가

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알았다. 반바지 차림으로 누워있던 나는 맨발로 뛰어나

가 슈트를 챙겨 입고 오리발과 레스큐 튜브를 둘러메고 CP를 뛰쳐나왔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얼핏 봐도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밀려 나가는 거대한 파도에 휩싸여 2차 가이드

라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뛰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은 뛰기 힘들어

숨이 금방 차올랐다. 물가에 도착해 오리발을 신고 파도 위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물에 뛰어든 후배에

게 소리쳤다.

“레스큐 튜브에 3명 이상씩 달아서 구조해라. 그리고 무조건 좌·우측으로 빠져. 절대로 거슬러 나오려

고 하지 말고!”

이안류는 먼바다로 빠르게 물이 빠지는 현상이다. 거기에 휩쓸려 가는 사람을 잡고 다시 역으로 거슬

러 나온다는 것은 자칫 구조대원까지 위험해진다. 측면으로 빠져 이안류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

선이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나마 튜브를 잡은 사람들은 다행이었다. 맨몸으로 허

우적대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잡으세요!”

빨갛고 길쭉한 레스큐 튜브는 부력이 좋다. 튜브를 잡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떠 있다는 안도감에 정

신을 차렸다. 나는 포도송이처럼 3~4명의 사람을 레스큐 튜브에 주렁주렁 매달고 사력을 다해 이안류

를 벗어났다. 2차 가이드라인 밖으로 벗어나는 요구조자들은 제트스키와 구조 보트가 구조하여 빠른

속도로 낮은 곳으로 실어 날랐다.

나는 오로지 오리 발을 신은 다리의 힘으로만 요구조자 3~4명을 끌어냈다. 허벅지가 터질 듯 팽창됐

다. 네 번쯤? 아니 다섯 번쯤? 들락거리며 구조했을 때 잠시 주변을 살폈다. 상황은 좀 진정되어 보였

다. 멀리서 제트스키를 타고 구조 활동을 하던 후배가 다가왔다.

“형님, 2차 가이드라인 바깥쪽은 다 처리했습니다. 낮은 쪽의 요구조자만 육상으로 이동 조치해주십시

오.”

구조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나는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울 만큼 체력이 소진돼 있었다. 후배들에게 마

무리를 맡기고 겨우 걸어서 물 밖으로 나왔다.

“수고했다 강윤아.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전원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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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의 상황 설명에 나는 안도했다. 우리가 구조한 사람은 약 80명이었다. 자칫 이 중에 단 한명이

라도 먼 바다로 떠내려가거나, 빠른 물살에 휩쓸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면 사망사고로 이어질 뻔했

다.

다음 날 언론에는 해운대 이안류 사고가 크게 보도되었다. 소방청과 부산소방본부도 자세한 상황파악

을 위해 CP로 계속 연락해왔다. 해경과 해운대구청 등 관계기관에서도 연신 CP로 찾아와 사고 경위를

물었다. 팀장님은 몰려드는 질문에 대응하느라 자리에 제대로 앉지 못했다.

다친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었지만 아무도 우리가 벌였던 사투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이안

류가 왜 일어났는지에만 질문이 집중되었다. 우린들 바다라는 대자연이 부리는 조화를 어찌 알겠는가?

이안류에 휘말렸던 사람들을 단 한명도 놓치지 않고 구조했던 나와 후배들의 노력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잊혀갔다. 아니 처음부터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어쩌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을 만한 사람을

찾는 듯도 하여 쓸쓸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 섭섭할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었다.

부산의 바다는 늘 그렇다. 연인, 가족, 친구들이 사시사철 들러 추억을 만든다. 그 모습을 시기라도 하

는 걸까? 뜨거운 여름날이면 불현듯 들이닥치는 바다의 용심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일이다. 해마

다 바다를 지키는 소방관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다.

그렇게 석 달이 넘게 바다를 누비고 돌아온 동료들은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에도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바다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이야기에는 항상 이안류가 등장한다.

3장 절규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죽으려는 자, 살리려는 자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대립: 내가 일을 하며 겪은 구조상황 중 자살은 구조대원으로서도 아주 힘든 상

황임이 분명하다.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물속에서도, 고층 건물에 매달려 구

조작업을 할 때도 심리적인 압박이나 괴로움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

러한 상황에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 즉 심리적 고통의 대상은 바로 ‘나’다. 훈련과 경험

을 통하여 단련되어 있기에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자살 출동은

다르다. 죽음에 대한 심리적 고통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 타인 즉 죽으려는 사람이다. 그런 고통이 내

마음에 함께 섞여 나타난다. 그것이 ‘죽으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가 대립하는 상황을 만든다.

이런 일이 있었다. 10여 년 전 있었던 사건으로 이 사고는 언론에도 꽤 많이 보고되었는데 사연은 이

렇다. 빌라 4층 난간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리겠다고 아우성쳤다. 연인과의 이별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

숨을 끊으려 했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뛰어내릴 기세였다. 출동한 경찰, 소방 등이 빌라 아래

에서 남자를 설득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경찰이 남자를 설득하기 위해 올라가

겠다고 자원했다. 이 젊은 경찰은 테러범이나 인질범을 진압하는 경찰특공대원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잘 훈련된 경찰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소방관의 방화복을 입고 올라갔다. 까만색 경찰특공대 옷보다 소방관의 옷이 자살 시도자에게

위압감을 덜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래에서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설득은 순조롭게 잘 되었다고

한다. 경찰특공대원은 진심으로 남자를 대했고 죽음 가까이 다가간 영혼을 달래고 또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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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남자의 몸은 안쪽으로 들어왔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안도의 한숨

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남자는 이내 몸을 틀어 경찰을 부둥켜안고

베란다 아래로 몸을 던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아래로 추락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안타깝게도 설치해 놓았던 에어매트를 비켜났다. 두 사람의 육신은 딱

딱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충격적인 현장이었다. 두 사람 다 살지 못했다.

경찰특공대원은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어린 딸은 영결식에서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은 오열했다. 죽으려는 자를 살리기 위해 높은 곳에 올랐던 젊은 경찰은 그렇게

순직했다. 그가 평소 유능하고 훌륭한 경찰이었던 것이 알려지자 주변의 안타까움이 더했다.

죽으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끝은 둘 다 살 수도 둘 다 죽을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자신의 목에 겨

눈 칼이 혹여 타인에게 돌려질 수 있고, 스스로 뛰어내리려 했던 높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껴안고 떨

어지기도 한다. 그것도 자신을 살리려고 했던 사람들을 말이다.

죽고자 마음먹은 이들과의 대립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다른 사고 현장은

구하는 자들의 의지로 이루어낼 수 있지만, 자살은 구하려는 자의 의지보다 죽으려는 자의 마음을 어

떻게 바꾸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마음을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최첨단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억

만금의 돈이 있어야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무슨 말이 되었든 자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없는 말

을 해서라도 설득해야 한다. 자살 출동이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누가 되었

든 죽으려고 하는 자를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산

목숨이 더 힘들다는 이가 많다. 살기 힘든 세상이라며 하루에 수십 명씩 몸을 던지고, 약을 들이켠다.

그렇더라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진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대한민국. 자살자와 그 죽음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매일 서로 마

주 봐야 하는 나라. 아무리 멀리 있어도 작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더 힘들고 어렵다. 삶을 놓으려는 사

람과의 대화가 높은 베란다 난간이나 강 위의 다리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 또한, 삶의 소

중한 의미가 자꾸 사라져 가는 세상에 그래도 이렇게 타인의 삶을 위해 희생해가며 죽으려는 자를 막

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4장 내 가족, 나의 동료

하늘의 별이 된 소방관들

안에 사람이 있어요!: 매년 평균 10명 정도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순직한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아니더

라도 나는 죽어간 동료들의 소식을 늘 접한다. 어림잡아도 매년 10명 남짓이라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어느 시·도, 어느 곳에서 일하는 누가 어떤 현장에서 어떻게 죽어갔는지 소방관들은 가장 정확하

고 빠르게 소식을 접한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동료가 쓰러진 그 자리에 내가 있을 수도 있다. 또

한 나의 몸이 찰나의 순간에 불타 사라질 수 있음을 느낀다. 소방관이 되고 나서 매년, 매달 동료의 사

망 소식을 듣는다. 그들의 남겨진 가족이 우는 모습이 내 가족의 모습과 겹쳐짐을 느낄 때 가슴은 더

욱 아파진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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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4일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차가운 어느 날, 누군가 지른 불에 골목길 주택이 화마에

휩싸였다. 불이 난 연립주택은 좁은 골목에 있었고, 불법 주·정차된 많은 차 때문에 소방차는 진입이

어려웠다. 그때 현장에 도착한 서울 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 구조대원들은 한 할머니의 외침을 들

었다.

“안에 사람이 있어요!”

자기 아들이 주택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지체할 것 없이 9명의 소방관은 주택 내부로

진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불에 탄 주택은 무너져 내렸다. 붕괴한 건물더미에 소방관

9명이 매몰되었다. 3명은 구조되었지만, 6명은 그대로 무너진 주택 잔해에 깔렸다. 차가운 콘크리트 더

미 아래, 더 차갑게 식어있는 동료들의 시신 여섯 구를 또 다른 소방관들이 끄집어냈다. 절기상 봄이

었지만 하늘에서는 눈발이 날렸다. 대한민국 소방역사에 있어 가장 슬픈 출동으로 기록되고 있는 ‘서

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화재 사고’다.

6명의 아까운 소방관이 이 사고로 하늘로 떠났다. 타고 남은 건물 잔해에 깔려있던 소방관들은 ‘방수

복’을 입고 있었다. 방수복은 말 그대로 물을 막는 옷이다. 불을 막는 옷을 입어야 할 소방관들은 비옷

을 입고 불 속으로 뛰어든 셈이다. 이 사고로 ‘방화복’이 지급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집에 불을 지

른 범인은 할머니가 구해달라고 했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불을 지른 후 이미 현장을 떠나고 없었다.

아들은 얼마 후 경찰에 잡혔다.

소방관 박동규, 김철홍, 박상옥, 김기석, 장석찬, 박준우는 대전현충원에 묻혔고, 1계급 추서되었다. 살

아남은 소방관은 온몸에 화상의 흔적을 남긴 채 동료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여전히 소방관의 삶을

살고 있다.

더 많은 동료의 죽음이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들이 죽은 현장은 내가 겪은 현장의 모습과 모든

것이 닮았다. 이들을 살리기 위해 절규하는 동료들의 모습도 내가 아는 동료들의 모습이다. 놀랍게도

닮아 있는 사고의 현장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동료들에게 다시 나타난다. 그들이 사라져

간 곳이 불 속이든, 물 속이든 먼저 간 동료들의 모습은 결코 남은 이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가

고 없는 빈자리는 새로운 누군가로 채워지고, 매일 반복되는 출동의 일상이 그들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기억한다.

먼저 간 동료들이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의 결

과물을 고스란히 받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홍제동 주택화재 사고로 소방 장비가 개선되었고, 조직이

개편되었다. 동료를 잃고 3년 후 저수지에서 목숨을 버린 정희국 소방관은 위험직무순직 판결을 받음

으로써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가 얼마나 위험한지 많은 사람에게 알렸다. 이들이 남기고 간 유산

이 같은 일을 하는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 적지 않기에, 우리는 절대 그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멀리 밤하늘의 별이 되어 어딘가를 비추고 있을 순직 소방관들의 영혼이 부디 편히 쉬기를 바란다. 그

리고 그 별이 내는 빛이 또 다른 죽음을 맞닥뜨린 산 자들을 보호해주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산 자들

이 자신을 보호하고 빛의 방향을 바라보며 부디 감사하기를 또 바란다.

5장 당신의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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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낮은 곳을 바라보라

사고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사회적 약자들: 서울지방경찰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폐지를 싣고 가다가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하는 노인의 수가 최근 3년간 21명에 달한다고 한다. 해마다 폐지를

줍는 노인이 당하는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단순히 교통사고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가 본 많은 구조현장은 사회적 약자가 늘 사고의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은 다 같지가 않다.

산업현장에서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다. 생업을 위해 주말에도 위험한 기계 사이를 오가며 일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 우리는 삶을 이어

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다가 사고로 숨진 이들의 소식을 뉴스로 가끔 접하고는 한다. 초고층 주상복

합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일용직 노동자(부산 엘시티 추락사고), 지하철 안전 문을 수리하다

가 사망한 외주업체의 젊은 직원(서울 구의역 사고), 화력발전소에 설비 점검을 하다가 컨베이어 벨트

에 끼어 사망한 비정규직 근로자(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등 사고의 현장에서 변을 당하는 이들은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힘들게 번 하루 일당을 맘껏 써보지도 못하

고 아끼고 또 아끼는 사람들이다.

힘들고 어려운 산업현장이나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

들은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곳의 위험한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당연하듯이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고스란히 감내하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위험 자

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위험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안전하게 생업에 임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인

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고 만든 기계에 인간이 말려 들어가 살이 으깨어지고 뼈가 바스러진다. 내장

이 쏟아지고, 온몸이 분리되어 비극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산업 현장에는 무수히 많다고 들

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 사망자가 한 해에만 971명이다(고용노동부 통계 2018). 하루에 3명 가까이 일

터에서 죽어 나간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다.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IT 강국인

대한민국은 여전히 산업재해의 후진국이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의 산업 환경이 산업화 초기 시대의 위

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낮고 어두운 곳을 바라봐야 한다. 그런 관심이 제도를 만들

어 위험을 줄이고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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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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