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초현실주의(마르크 샤갈, 막스 에른스트)

샤갈의 마을에 색이 내리다

황금빛 수풀, 납빛 하늘은

생기 가득한 이슬의

푸른 불꽃으로 나뉘고

피는 반짝이고, 심장은 고동친다.

이 글은 마르크 샤갈에게 라는 시입니다. 초현실주의 시인인 폴 엘뤼아르가 샤갈의 작품에 대해 쓴 글입니다. 우리나라 시인인 김춘수도 샤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김춘수는 특히 샤갈의 고향인 벨라루스 비테프스크에서는 3월에도 눈이 내린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르크 샤갈은 시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화가였습니다. 피카소를 비롯한 20세기의 미술가들은 누구나 새로운 사회에 걸맞은 미술을 발명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샤갈은 사회 혁명이나 미술 혁명과는 거리가 먼 미술계의 서정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천사, 연인, 황소, 서커스 장면, 수탉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에펠탑의 신혼부부>에서처럼 동물이 바이올린을 켜기도 하고 사람들이 하늘을 날기도 합니다.

에펠탑의 신혼 부부

샤갈은 자신의 고향인 비테프스크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비테프스크는 유대인 지역입니다.

황제가 러시아를 다스리던 시기에 유대인은 러시아의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은 농부도 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 가운데 흔치 않게 화가가 된 샤갈은 자신에게 낯선 사회인 농촌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러시아의 유대인 사회는 무너져 가고 있었지만 농촌 사회는 여전히 생명력이 넘쳤기 때문입니다.

<나와 마을>은 농촌의 삶에 대한 샤갈의 동경이 잘 반영된 작품입니다. 화면 오른쪽에 샤갈인 것처럼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보입니다. 강렬한 청록색 얼글은 백야가 지속되는 러시아의 눈부신 하늘빛을 나타냅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색조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러시아 농부의 활력을 잘 보여줍니다. 이렇듯 샤갈은 혹독한 추위의 러시아를 몽환적인 색채로 물들였습니다.

청록색 얼굴만큼 인상적인 것은 화면 왼쪽에 크게 확대된 흰 암소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말을 건넬 것 같습니다. 암소의 얼굴에는 시골 아낙이 소젖을 자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소의 얼굴보다 작게 그려져 있어 희한한 느낌이 듭니다.

마을의 집 가운데 몇 채는 거꾸로 뒤집혀있고, 농부의 아내 역시 천장을 걷듯 거꾸로 뒤집혀 있습니다. 꿈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입니다. 반면 쟁기를 맨 농부와 교회는 똑바로 서 있습니다. 한화면에 두 개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공간들로 조각난 화면이 조화로워 보이는 이유는 암소의 코끝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원들 덕분입니다.

샤갈은 자신이 꿈이 아닌 추억을 그렸다고 강조하며 초현실주의와의 연관성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샤갈의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왜곡된 추억은 매우 몽환적입니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꿈길을 걷는듯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샤갈은 색은 야수주의, 형태는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고, 특유의 감수성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이 세계는 은유적이고 서정적인 색의 세계입니다. 샤갈이 초현실주의자의 선구자로 불리는 까닭은 그 누구도 유치하다는 이유로 꿈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 독특한 꿈의 세계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샤갈의 작품을 보고 많은 시인의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나와 마을

여동생의 탄생으로 애완 새가 죽었다?

<두 아이를 위협하는 나이팅 게일>은 독일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가 자신이 꾼 꿈을 그린 작품입니다. 에른스트는 어렸을 때 애지중지 하던 애완 새가 죽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얼마 후 에른스트의 여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어린 에른스트는 여동생이 태어나서 애완 새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에른스트의 꿈에서는 새와 인간이 혼동되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른스트는 이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두려운 경험을 표현했습니다. 여동생이 애완 새를 죽였다는 상상이 그에게 큰 상처를 준 것입니다. <두 아이를 위협하는 나이팅게일>을 보면, 지붕 꼭대기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있습니다. 어린 소녀를 팔에 안고 날아가려고 합니다. 땅바닥에는 한 소녀가 기절해 있고, 다른 소녀는 공포에 질려 손에 칼을 든 채 도망치고 있습니다. 빨간색 나무 문 위에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소녀를 위협하는 나이팅게일입니다. 불길한 하늘색과 창백한 소녀들, 답답한 구성이 관람객을 소름이 끼치는 꿈의 한 장면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에른스트가 이 작품에 활용한 기법은 '콜라주'입니다. 화면에 인쇄물, 쇠붙이, 나무 조각, 모래 등 여러 물질을 붙여 구성하는 방법입니다. 에른스트는 성질이 다른 요소들을 캔버스에 붙여 이질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합니다. 나무 문이나 집, 남자가 든 초인종을 보면, 입체적인 사물이 평면인 캔버스에서 튀어나와 있어 기묘합니다. 이렇듯 초현실주의자들은 관람객에게 항상 놀라움을 주려고 했습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위협하는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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