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

저자: 김영하

출판: 문학동네(2017)

북콘택트를 위해 소나무언덕4호에서 모셔옴

<책소개>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

김영하 7년 만의 신작 소설

작가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7년 만이다.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를 포함해 일곱 편이 실렸다. 묘하게도 편편이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들이다. 각자도생하는 하루하루가 외적 관계뿐 아니라 내면마저 파괴시킨다. 인간은 그 공허함을 어떻게 메우며, 혹은 감당하며 살아가는가.

그해 4월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참혹한 비극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매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칼럼으로 쓰고 있었다. 4월엔 당연히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의문의 참사에 대해 썼다. ‘이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썼는데 팩트와 근거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편집자가 그 발언의 근거를 물어왔다. ‘근거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나의 직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더니 그런 과감한 예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잘난 팩트의 세계를 떠나 근거 없는 예감의 세계로 귀환했다. (…)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_‘작가의 말’에서 [출처:Yes24]

<저자소개>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과 『랄랄라 하우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해외 각국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출처:Yes24]

<목차>

오직 두 사람_009

아이를 찾습니다_043

인생의 원점_085

옥수수와 나_111

슈트_171

최은지와 박인수_191

신의 장난_233

작가의 말_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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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웬 사치품이에요?

p.38

"그 인간은 그렇게 살다 죽을 거다. 넌 할 만큼 했다.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 말은 저에게라기보다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 거예요. 그래요.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어떤 말을 남에게 하고 살지요.

pp.65-66

이 이상한 미래에서 내가 수행해야 할 사명은 뭐지?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걸까? 영원과도 같았던 지난 십 년 동안 그의 의무는 자명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 명료하고도 엄중한 명령 앞에 모두가 길을 비켜주었다. 그들 부부는 좋은 집과 직장을 바쳤다. 부부관계도 사라졌다. 실종된 아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되근하는 피곤한 새벽에도 전단지를 들고 지하철역 입구에 가서 서면 부쩍 힘이 났다.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무가지 배포원들과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그의 사정을 아는 동료들이 어려운 일을 대신 떠맡아주기도 했다.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퇴행성이라는 미라의 조현병까지도 씻은듯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나고 보니 어찌어찌 견뎌냈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은 바로 지금인 것 같았다. 언젠가 실수로 지름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일등으로 골인하고서도 메달을 빼앗긴 마라토너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았다. 기대했던 것과는 저녛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으 누구의 잘못일까? 윤석은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출쩍임을 들으며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왜, 모든 것이 어그러졌을까?

p.71

미라가 정신병원에 가면 성민이는 절대로 돌아오지 못한다, 는 비이성적인 믿음. 이 믿음은, 성민이만 돌아오면 미라의 병은 깨끗이 낫게 되리라는 또다른 믿음과도 이어져 있었다. 그런 믿음을 차치하고라도 윤석은 미라를 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미친 아내를 떠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윤석이 정신 나간 아내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매일 전단지를 돌린 것처럼, 남들이 보기엔 아무 희망도 없는 부부관계에서 그는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못해도 돼. 웃지 않아도 좋아.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사막을 건널 때까지.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가겠는가.

p.76

모르지. 본 적도 없고 만진 적도 없어.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처럼, 내 내부에 있다는, 인간마다 고유하다는 그것에 대해 나도 이전엔 아무 관심도 없었지. 너를 잃은 후에야,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너의 갈색 머리카락을 주워본 후에야 나는 유전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지. 그게 내 아이를 다시 찾아줄지도 모른다고 믿었지.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 네가 내 앞에 앉아 있지. 그런데 나는 네가 아주 낯설고 너 역시 그렇겠지. 우리가 네 배내옷에서 찾아낸 머리카락과 네 구강에서 긁어낸 세포에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하면 그게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는데,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한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왜 그것을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을까?

p.92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p.130

"하긴 네가 어떻게 알겠니. 가끔은 몰라도 살아야 되는 게 인생인데, 어차피 이건 네 인생도 아니잖아. 넌 빠져나가면 그만이니까."

p.199

"너 나한테 무슨 신탁 비슷한 거 바라고 온 거 아니야? 곧 죽을 인간이니 뭔가 영험한 게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지혜로워진게 아니라 정시닝 이상해진 것 같다."

"너 그 여자 좋아해?"

"아니. 전혀."

"그럼 잘라. 너한테 수작 부리는 게 벌써 수상해. 내가 이렇게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느끼는 게 뭔지 알아?"

"무슨 자기계발에서 나오는 것 같은 개소리 할 거면 집어치워. 죽을 떄 죽더라도 약은 팔지 말자."

“살아오는 동안 내 영혼을 노렸던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는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이 갑자기 주먹을 뻗었다. 병자답지 않은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렇지, 주먹이 날아오면 이렇게 잘도 피하면서 왜 영혼을 노리는 인간들에게는 멍하니 당했냐는 거야."

p.230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p.257

정은씨, 난 언제나 현재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만 지나가자.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런데 늘 더 나빠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더 행복했어요. 그럼 지금 이 순간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는 가장 젊고, 제일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는 건데......우리 모두 여기서 늙어가다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처음 들어왔던 때가 그래도 좋았어. 그땐 젊었고, 희망도 있었다."

정은은 눈을 떴다.

"고등학교 때 담임이 만날, 우리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다, 같은 헛소리를 칠판에 적어놓곤 했어요. 그 시절 노트에 보니까 내가 이렇게 적어놨더라구요. 그토록 원했던 내일도 막상 오면 헛되이 보낸 어제보다 나을 게 없다는 걸 알게된다. 너무 비관적인가요?"

"현실적인 거죠. 전 왜 여기서 나가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을까요? 나간다고 더 나아질 삶도 없는데."

p.260

모든 희망이 사라진 지금에서야 이들은 하나의 행동,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에 동의했고, 최선을 다해 협력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그들이 공유하게 된 것,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p.269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림으로써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아이를 되찾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지옥은 그 아이를 되찾는 순간부터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문학에 어떤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언어의 그물로 엮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문학은 혼란으로 가득한 불가역적인 우리 인생에 어떤 반환의 좌표 같은 것을 제공해줍니다. 문학을 통해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독자 앞에 불려오고, 지금 쓰인 어떤 글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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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일상화. 목표를 향해 가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많은 결핍들을 당연히 일상화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 목표를 상실함에 대한 허무만 더 느끼고 막막해지는 것...너무 와닿았다. 뭔가 다른 문제들도 그 목표만 이루어지면 다 해결되리라 믿었는데, 악화되거나 변화없을 때의 막막함. 나이가 들수록 익숙함에 더 젖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답답하고, 막막함만 느껴질 수 있다해도, 조금 더 마음을 다잡으면 지름길로 잘못들어 1등으로 골인하고서도 메달을 빼앗긴 마라토너라면, 기대와 다른 결승점을 한 번으로 보지 않고, 다시 그 실수를 병가지상사로 삼아 1등할 수 있었던 그 가능성을 토대로 다음 결승점을 다시 잡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다음 목표를 잡아야지...아들과의 관계회복...- "아이를 찾습니다"를 읽은 후...

김영하 작가님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평범하고, 너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인데 모두 너무 막막하다.ㅠㅠ 그런 면에서 정말 읽기가 두려운데 지금은 내가 마음의 힘이 좀 있는 때인가 보다. 처음 읽을때는 영향만 받았는데, 이제는 뭔가 따박따박 따지거나 어설프게나마 해결책을 - 내가 이겨낼 힘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했다. 오~ 나 지금 좀 희망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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