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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누나 북한인민배우 문정복),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 영화배우...
2000(누나 북한인민배우 문정복),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 영화배우...
중앙일보 2000.3.3. '인생과 추억' 1일 타계한 배우 문정숙씨.
40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감격스럽습니다."
1998년 12월 부천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문정숙씨는 밝은 목소리로 무대인사를 했다.
자신이 출연한 58년도 작품 '종각'(감독 양주남)이 특별 상영되는 것과 관련해 초청받은 문씨는 여전히 세련된 모습이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나이든 관객들은 50, 6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했던 여배우로서의 풍모가 여전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1996년에는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 군위에 출연해 식지 않는 연기열을 보였던 문 감독이 1일 오후 10시 30분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향년 72세. 유족으로는 CF촬영 감독의 아들 장문기(48) 씨가 있다.
지난해 4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고 이만희 감독의 딸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이혜영(38) 씨를 만났을 때도 고인은 이 씨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한때 이 감독과 부부 사이이기도 했던 고인은 혜영 씨에게서 자신의 옛 모습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문씨는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친근한 미소와 상냥한 눈빛이 인상적인 배우로 남아 있다. 특히 이 감독의 만추에서 외출한 여죄수 혜림의 캐릭터는 고인의 대표적 이미지로 기억된다.회한과 애수에 찬 모습과 겹치는 적극적인 여성상이 50년 연기 생활에서 고인이 쌓아올린 이미지였다.
27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보성여학교에 다니던 17세에 연극 왕자 호동에서 시녀 역을 맡아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52년 양공주의 어두운 삶을 생생하게 그린 신상옥 감독의 악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고인의 연기 세계는 이만희라는 능력 있는 감독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유현목 감독의 유전의 애수 종각(감독 유정남) 등 초기 10여 년의 작품에서는 내성적이고 순응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감독을 만난 뒤 마의 계단(64년)을 비롯해 검은 머리 일곱 명의 여자 포로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여성상을 드러냈다.
1998년 북한 인민배우인 누나 문종복 씨가 고인을 만나고 싶다고 영상편지를 쓴 사실이 방송에 나와 화제가 됐다. 그러나 자매는 끝내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문정복 씨의 아들이자 고인의 조카인 탤런트 양택조 씨는 1일 밤 빈소를 지켰다.
한편 영상자료원은 6일부터 10일까지 고인을 추모하는 회고전을 연다. 이만희 감독의 검은 머리 마의 계단(이상 64년 작), 귀로(67년)를 비롯해 예라이샹(66년) 등이 예술의전당 예술자료관 1층 시사실에서 매일 오후 2시에 상영된다.
발인은 4일 오전 11시 경기 고양시 벽제화장장. 02-590-2557 이영기 기자
중앙일보 201년 8월 22일 샛별 한 번에 청춘은 맨발이다(86), 이만희 문정숙 1
●유부남 감독과 유부녀 배우, 애틋한 사랑
영화감독과 배우가 연인으로 찍은 영화는 호흡이 남다르다. 내가 최고로 꼽는 늦가을 뒤에는 이만희 감독과 여주인공 문정숙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이 감독과 문정숙은 서로에게 반했다. 이 감독은 잘생기지 않았지만 남자들도 반할 정도의 카리스마와 매력을 갖고 있다. 배우들이 제일 좋아하는 감독이었어 촬영장에서 화내지 않고 지도할 일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혼낼 때도 밤 주는 척하면서 "야" 하고 귀엽게 속삭였다
문정숙은 서구적인 마스크지만 천진난만하고 조용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었다. 콧소리가 조금 섞인 음성도 매력적이었다. 여배우 중에서 노래를 제일 잘했다 그의 매력이 최고로 발휘된 영화는 검은 머리(64)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서 문정숙은 조직의 보스인 장동휘의 '정부'로 등장한다. 그러나 보스의 부하에게 린치를 당하고 맥주병에 오른쪽 눈을 찔린다. 문정숙은 고개를 숙여 오른쪽 눈의 상처를 가린다. 너무 매혹적이어서 그 헤어스타일이 그때 대유행했다. 문정숙의 누나는 북한 인민배우 문정복이다. 문정숙은 연극배우 언니를 쫓아 자연스럽게 영화배우가 됐다.
이 감독과 문정숙은 62년 '다이얼 112'에서 처음 감독과 여배우로 만났다. 당시는 흔한 감독과 여배우 사이였다. 이 감독이 나와 몸매가 잘 맞았듯 여배우들 가운데 문정숙과 찰떡궁합이었다. 이 감독 영화의 3분의 1 이상이 문정숙 주연이다. 문정숙이라는 여배우의 장단점을 알고 그것을 최대한 돋보이게 한 사람이 이 감독이다. 늦가을의 어설픈 여주인공은 당연히 문정숙의 것이었다.
이 감독과 문정숙을 가장 잘 아는 배우 이해련은 두 사람이 '흑발'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감독이 문정숙에게 푹 빠진 것 같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각각 배우자와 자녀가 있었다. '천생연분인데 왜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라고 한탄하는 안톤 체홉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의 남녀 주인공처럼…일부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나쁘게 보았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동거를 한 것도 아니었다. 데이트 장소가 없어 뚝섬에 신혼살림을 하고 있는 이혜련의 집을 가끔 빌리기도 했다.
문정숙은 남편과 헤어진 뒤 자식과 함께 약수동에 살았다. 이 감독은 밤에 가끔 그 집을 찾았다. <늦가을> 촬영 틈틈이 문정숙은 어젯밤의 일을 내게 털어놓았다. 미스터 신, 나는 밤에 잠을 못 잤다. 이 감독이 술을 마시고 돌아와 개가 짖는다고 발로 찼다고 한다. "아저씨가 개를 죽인다"고 우리 아이가 울고 소리치는 바람에 힘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때때로 말썽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은 67년 전쟁영화 '얼룩무늬 사나이' 촬영을 위해 베트남으로 3개월가량 함께 촬영하러 갔다. 마지막으로 함께한 작품은 74년 '청녀'다. 말다툼을 하다가 사랑을 반복한 것 같아. 문정숙과 누구보다 친했던 엄앵란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신성일 정리=장상연 기자 "출처: 중앙일보" "남겨줘" 청춘은 맨발이다(86) 이만희와 문정숙
여성신문 2014년 3월 24일 문정숙 연극배우로 명성 45년간 은막 주연 김수연 / 영화감독
이만희 감독 늦가을 여죄수로 열연, 1952년 악야로 데뷔, 300여편 출연
장민기는 문정숙의 외아들이다 지금 60세쯤? 기록영화를 만들면서 강원도에 살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큰아들과 장충초등학교 6학년 같은 반이었다. 그때 문정숙은 우리 동네에서 아들과 둘이 살았는데 너무 힘들 때였다. 남편과 별거하고 새 남자를 사귀며 영화 일에 쫓기고 있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문정숙을 좀더 자세히 바라보자. 누나 문정복은 유명한 연극배우였고, 형 양모 씨는 작가이자 연출가였다. 그들은 북한에 갔기 때문에 나는 만난 적도, 연극을 본 적도 없다. 다만 그들의 아들 양택조(영화배우)를 젊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문정숙은 조카가 안타까웠지만 그때는 직업이 별로 없었다. 처남에 장일호 감독님이 있다
사람들이 배우 문정숙을 좋아하는 것은 그 이름이 '정숙'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처음 문정숙을 본 것은 이만희 감독의 늦가을부터다. 젊은 떠돌이 신성일과 여죄인 문정숙의 만남은 짧고 허무하며 한숨이 터져 나왔고 뜨거운 정사에 관객들은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나는 여배우보다 감독에게 끌렸고 그 후 이 감독의 주연배우는 문정숙이 되고 말았다.
1968년 내 영화 '피해자'에는 문정숙과 김진규가 출연했다. 지금도 종교와 연계된 작품은 힘들지만 이창동의 밀양 정도가 묵과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도연은 설교를 들은 청중에게 거짓말이라는 노래를 확성기로 튼다. 청중보다 더 놀란 것은 관객이었다. 삭발하고 비구니 촬영을 준비하던 김지미가 반대세력에 굴복하던 시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때 설교하는 입을 클로즈업으로 표현해 신도들을 작고 무력하게 찍었다. 아무래도 위선을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종교를 비판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때 원작자 이범선은 문정숙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촬영장에 나가서 가만히 여배우를 바라만 보고 돌아가곤 했다. 나는 우이동 촬영을 위해 문정숙을 설득해 두 사람의 데이트를 주선했다. 30분만 차를 마시고 돌아오라고 했지만 3시간 넘게 송원과 누각을 거닐며 촬영에 차질을 빚었다.
문정숙은 얼굴보다 머리에 더 신경을 쓰는 여배우였다. 검고 긴 머리에 반한 감독은 영화에서 얼굴의 절반을 긴 머리로 가리고 나오도록 했다.
나는 아직 남에게 욕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 정숙'에서 정상급 여배우에게 말할 수 없는 험악한 욕을 전화로 들었다. 새벽 3시에 들은 수화기에서 쏟아지는 문정숙의 욕설. 그녀는 잔뜩 취해 있던 곁에서 붙잡는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때 늦가을 제작자 허현찬은 이만희 감독을 베트남에 보내 얼룩무늬 남자를 찍었는데 문정숙이 굳이 따라가겠다며 함께 보냈다. 돌아와 필름을 검토해 보니 여배우는 단 세 컷, 그것도 하늘을 배경으로 찍혀 있었다.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제작자에게 글쎄, 서울 하늘이나 베트남 하늘이나 다를 게 없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된 것이다. 남들이 전쟁을 하든 영화를 찍든 허니문처럼 보내며 축하했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그때가 미안하다.
문정숙은 노래도 잘하지만 그림도 좋아했다. 박근자(감독 유현목 여사) 전시회에서 꿈꾸는 바이올렛을 사다 방에 걸었는데 벽면이 좁아 어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내 개인의 생각은 신상옥, 최은희 콤비에 버금가는 문정숙, 이만희였는데 그때의 시류는 그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장민기가 모든 근심을 떨쳐버리고 어머니의 기록영화를 유감없이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연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함께 합니다.>
문정숙 19292000년. 평안북도 선천 태생 보성여학교 졸업 후 극단 아란에 입단. 예술극회와 신협을 거쳐 1급 연극배우로 명성을 얻는다. 1952년 영화 악야(신상옥 감독)로 데뷔. 1996년 학생부 군신위(박철수 감독)까지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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