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살기 위한 연주가 시작된다.

'피아니스트' 살기 위한 연주가 시작된다.

영화 '피아니스트' 포스터

✑ 나는 피아니스트이며, 나의 죄명은 유대인입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당시 폴란드에 블라디슬로프 슈필만은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폴란드 국영 유명 라디오 방송에서 피아노를 치던 중, 방송국이 독일에 폭격을 당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유대인들은 게토라는 특정 구역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기사를 읽고, 가족들과 짐을 싸던 중 영국과 프랑스군이 폴란드를 도와줄 것이라는 희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방송과 달리 결국 독일군들이 폴란드를 점령합니다.

바르샤바를 점령한 나치 친위대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푸른 다윗 별 문장을 팔에 달도록 강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게들은 유대인 출입금지 표지판을 걸고 또 한 번의 이주 명령을 내려 그들을 고립시키는 등,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그로 인해 슈필만은 첼리스트 도로타와 카페에서 소소한 대화조차 편하게 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나치 독일 기업인들의 허락 없이는 일울 할 수도 없게 되자 슈필만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악화만 되어가던 중, 나치군은 유대인들 중 나이가 많은 노인들부터 수용소로 보내 죽이기 시작합니다. 슈필만과 가족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함께 끌려갈 처지였으나 나치 편에 선 유대인 경찰이자 슈필만의 친구인 이츠하크가 그를 발견해 구해줍니다. 가족도 직장도 모든 걸 잃은 슈필만은 게토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게토에 살던 유대인들은 봉기를 준비합니다.

게토를 벗어난 슈필만은 폴란드계 레지스탕스의 도움을 받아 집안에서 숨어 지냅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지내며 간간히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지만, 레지스탕스들이 체포되고 슈필만 역시 이웃에게 들켜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결국 비상 연락망에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가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도로타의 남편이었으며, 둘 사이에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임신한 도로타가 첼로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슈필만은 착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후 도로타 부부의 도움으로 새로운 은신처를 마련하지만 그를 돕기로 했던 사람의 배신하자 그는 곰팡이가 핀 감자를 먹다 목숨을 잃을 뻔하게 됩니다.

한편, 바르샤바에서는 마침내 봉기가 일어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은신처가 이를 제압하던 독일군에게 공격받자 슈필만은 자신이 도망처 나왔던 게토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제는 완전히 죽은 도시가 되어버린 게토의 한 폐허에 숨어 들어가 추위를 피하며 지내던 중, 다른 폐허에서 쇠꼬챙이로 통조림을 따려던 슈필만은 실수로 이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통조림은 한 독일 육군 장교의 발 앞으로 굴러갑니다. 호젠펠트 대위는 슈필만의 몰골을 통해 그가 숨어 지내는 유대인이라는 걸 유추하지만 그가 누군지 묻습니다. 이에 슈필만은 피아니스트라 대답하자 이에 관심이 생긴 대위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킵니다. 그러자 슈필만은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정말 피아니스트임을 증명하기 위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필사적으로 연주합니다.

연주가 끝나가 호젠펠트 대위는 그를 즉결 처형하지 않는 대신, 그의 은신처 위치와 여분 식량이 있는지 확인한 후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후 호젠펠트는 슈필만이 피아노를 쳤던 곳에 자신의 사무실을 세우고 종종 그의 은신처에 들려 먹을 것을 지원해줍니다. 그러다 소련군의 공격으로 독일군이 퇴각하게 되자 대위는 마지막 식량을 전해주며 자신의 퇴각 소식을 알린 후 그에게 장교용 코트를 주고 헤어집니다. 독일군이 완전히 떠나자 숨어 지내던 유대인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와 살았음을 기뻐합니다. 이때 슈필만 역시 같이 나와 기쁨을 나누려다 호젠펠트의 코트 때문에 독일군으로 오해받습니다. 맹렬한 총격을 겨우 피한 그는 자신이 폴란드인아라 소리쳐 겨우 오해를 풀게 됩니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슈필만은 다시 폴란드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고, 자신의 동료에게 대위가 수용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슈필만은 그동안의 은혜를 갚기 위해 동료와 찾아가지만 이미 수용소는 철거되고 대위는 다른 곳으로 이송된 후였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곡을 연주하는 슈필만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 유대인의 참극을 그려낸 리얼리즘 영화

200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블라디슬로프 슈필만의 일대기를 그리며 진행되는 음악영화인 듯 하나 실상은 전쟁의 참극뿐만 아니라 나치가 잔혹성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유대인들은 가엾은 피해자, 나치군은 끔찍한 가해자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선택한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에는 물론 슈필만 같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학살을 당해야 했던 유대인들도 있으나, 같은 유대인을 배신하고 달아난 안텍, 나치의 편에 서서 살아가던 이츠하크, 나치에 저항하고자 했던 폴란드계 레지스탕스, 독일 장교였으나 슈필만을 몰래 살려주고 보살펴 준 호젠펠트 등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당시 폴란드인들이 어떻게 나치들에게 당했는지 세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이야기의 초반과는 다르게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나치의 만행은 심각해집니다. 휠체어에 탄 노인을 창 밖으로 던져버리는가 하면,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총살하는 등의 만행을 그래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허가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어 진흙 범벅이 된 음식을 허겁지겁 먹거나 길가에 그냥 널브러져 있는 유대인들의 시체들은 당시 얼마나 그곳이 지옥이었는지,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간절한 동시에 비참했는지 보여줍니다.

✑ 슈필만의 삶을 지탱한 마지막 끈, 피아노

이 영화를 다 보고 저희 엄마께선 저에게 이 영화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라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독일군을 만났을 때 조차도 피아노 연주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식량과 코트까지 받게 되는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슈필만에게 피아노는 그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기에, 단순히 피아노를 잘 쳤기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의 상황은 살기 위해 피아노를 처야 했으며,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그가 정신 나간 이 세상 속에서 제정신으로 버텨내기 위한 마지막 끈인 듯했습니다. 이는 독일 장교가 그의 정체를 묻는 장면에서 피아니스트라 대답하는, 그리고 장교의 지시에 따라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다 죽어가는 몰골로 피아노를 치지만 그 속에선 그 어느 때보다 슈필만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저 모든 감정과 생각을 죽이며 당장 생존하는 것에 몰두하던 그의 모든 감정들이 폭발하는 듯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주연상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승 수많은 상을 휩쓴 작품입니다. 강한 여운과 많은 생각거리를 진하게 남긴 영화 피아니스트는 오늘처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문득문득 다시 생각나게 될, 특히나 쇼팽의 음악을 듣는다면 반드시 떠오를 수작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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