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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사람의 존재라는 것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사람을 집어삼킬 듯이 몰려오는 커다란 해일이 오가고, 그보다는 작은 규모이나 역시 한 마을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다는 해일이 오가고. 그것이 바로 재해의 시작이자 구심점이 된다. 당연하기만 했던 일상은 그렇게 아스라한 형태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재해가 시작되며 잘 알고 지내던 교회의 목사님도,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무릎이 까져 울던 초등학생도, 엘레노어 가게에 자주 방문하던 단골손님도 모두 아침의 안개처럼… 사라졌다. 사람의 형체가 점점 줄어든다. 이것은 재앙이고, 재해이다. 신화 속에서만 나올 것 같던 저주가 선명한 빛으로 물들어 인간의 눈을 통해 전해진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일들이 형체를 갖추니, 미천한 인간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소중한 이를 잃은 모두가 슬픔과 비탄에 젖은 가운데, 엘레노어 부부는 그들과 아이의 안전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 다시 파란이 너울거리며 인간과 그 문명을 집어삼킬지 알 수 없었으므로. 가장 여리고 소중한 이는 곁에 둘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사이렌, 머글 세계는 그만 가는 것이 좋겠다.”

권유가 아닌 통보였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구태여 제한을 건 것이다. 그에 아이는 미묘한 표정으로 눈썹을 기울이다, 끄덕이며 답한다. 응! 하고, 말간 목소리로. 그러나 사이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말이 이렇게나 오래 이어질 줄은. 하루, 이틀. 길어봐야 일주일 정도가 될 줄 알았던 외출 금지 기간이 일 주, 이 주, 그렇게 한 달, 두 달 즈음이 되어갈 때. 주위 가득 무언가를 쥐고 있던 이가 그 무엇도 가지지 못한 채 집안에만 틀어박히니 절로 사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보냈던 편지들에는 답장이 없다. 다들 무언의 슬픔에 잠식한 탓일까?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는 거지? 애초에 슬퍼해야 하는 일인가? 인간의 삶은 상실로 이루어진 허무의 삶이지 않은가. 하물며 애초에 그들은 저들이 아끼던 사람을 전부 잃었다 말하는 것에도 어폐가 있지 않은가? 그냥 사라진 것뿐인데. 그 주위의 사람들은 형체를 볼 수 있는 거잖아? 먼지처럼 사라지고 흩어진 게 아니니까.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들 유난인지. 죽을 것처럼 구는지. 세상 하나가 멸망한 것처럼 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주위를 둘러싼 것들이 사라지는 건 슬픈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그렇다고 그게 날아오는 편지조차 무시할 법한 일이라구? 말도 안 돼! 그것도 이 사이렌 님의 연락을 받지도 않을 정도야? 엄마 아빠도 너무 유난이야. 설마 내가 그렇게 되겠어? 애초에 우리는 마법사잖아. 그런 일 따위는 지팡이로 어떻게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나?

침대에 늘어졌다. 세로로 위치한 침대를 구태여 가로지르며 다리를 벽에 바투 붙여 올리고, 약간 모자란 감이 있어 침대 아래로 자연스레 고개가 젖혀진다. 머리로 피가 쏠리고, 약간 어지러운 느낌이 들면서도 괜히 더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기우뚱거리다 위아래가 뒤집힌 물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지루해. 시시하고, 고작 그런 일들에 감정을 이입하며 슬퍼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들을 이해해보려 시도는 하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정론에 다다랐다. 무엇이 그렇게 서럽고 억울할까? 무엇이 그렇게 슬퍼서 지금 남아있는 이들을 돌보지 않고 사라진 것들의 흔적을 붙들어 오열하는 걸까?

가볍게 몸을 굴려 침대에 정 방향으로 누웠다. 몸이 굴려짐에 이불이 엉치뼈를 중심으로 둥글게 말렸다.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멍하니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 바보 같아. 내가 상실을 겪은 당사자가 아니라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내게 남은 것들이 더 소중하고, 나를 신경 써주는 것들이 더 소중한걸. 스러진 것을 아스라이 잊는 것도 살아가면서 꼭 배워야 하는 덕목이라고들 하잖아? 유일하게 소중한 것이 사라졌다면 새로 만들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애초에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자기 자신이라도 멀쩡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사고 아니야? 사람들은 너무 복잡해. 너무 섬세하고, 쓸데없는 것까지 의미를 부여해서 거기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 같아.

휙, 반동을 주어 재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리저리 헝클어지는 머리카락을 신경 쓰지 않고 열린 창가로 다가섰다. 가늘게 살랑이는 흰 커튼, 방안을 가득 채우는 햇빛이 산란하며 따스한 열감을 흩뿌린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초여름의 날씨. 마주하기에는 하늘 끝에 오른 태양 빛이 눈부셔 그를 등지고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창들에 등을 대어 가느다란 머리카락의 끝을 훑자면, 활짝 열린 창으로 세찬 바람이 건너온다. 그 상쾌한 방문에 섞인 달큰한 향내에 갈망은 커진다. 나가고 싶어. 밖은 이토록 한없이 따스한데도. 간질이는 풀내음이 이토록 찬란한데도. 무엇들이 그리 두려운 걸까. 귓가를 울리는 공기의 마찰음이 유독 크게 울린다. 그 소리에 묻히기를 바라는 듯, 누군가 볼 수 없도록 작게 입을 벙긋거렸다.

“사람들은 전부 이상해.”

너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런 것들에 과하게 자신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 당연하잖아.

무던하게도 지껄이는 것이다. 길다란 머리카락이 뺨을 스치며 입가를 가려준 것이 다행일까.

그저 달고 따스한 계절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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