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걷기 일기0239] 일기일회(一期一會)

[걷고의걷기 일기0239] 일기일회(一期一會)

날짜와 거리: 20210617 8km

코스: 불광천 – 문화비축기지 – 월드컵공원 -

평균 속도: 4 km

누적거리: 4,19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손주 두 명과 딸아이가 집에 오면서 집안은 난장판이다. 아무리 정리해도 손녀가 나타나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금방 어질러진다. 백일 막 지난 둘째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어른 세 명은 정신이 없다. 절 집 같은 집안이 장터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정신없는 상황이 불편했다. 그냥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편하고 좋았다. 이런 상황이 혼란인지, 아니면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며 정돈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 아내와 딸은 손주 두 명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를 하는 건지 노래를 부르고 함께 노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식탁은 식사를 하는 정돈된 곳인데, 이제는 그런 정돈은 사라지고 혼란스러움 속에서 새로운 정돈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를 고집하고, 편안함을 추구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틀을 유지하는데 온 신경을 쓰고, 틀이 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손주들이 만들어 놓은 난장을 보고 불편해하면 할수록 내게 돌아오는 것은 가족 내 소외뿐이다. 고립은 상대방을 탓할 수 없다. 자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느냐 아니면 홀로 고립된 삶을 유지하느냐는 온전히 자신의 결정이다. 그에 따른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다.

지금 주어진 상황을 다행스럽게 잘 수용하고 있다. 물론 할아버지가 할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아내가 음식 만드는 동안 잠깐 손녀와 놀아주거나, 혼자 움직이지 못하는 손자가 칭얼댈 때 옆에 앉아 눈을 맞추고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계속 얘기하며 놀아주는 일 정도이다. 아이들이 잠자러 들어가면 어질러 놓은 집안을 정돈하는 것도 나의 일이다. 변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 변화를 잘 수용하며 따르고 있다. 손자가 웃어주면 나도 따라서 웃게 된다. 손녀와 놀이를 하며 친구가 되는 재미도 좋다. 큰 행복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손녀와의 놀이 중에는 모든 중심이 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놀다가도 금방 자신의 세계에 빠져드는 아이를 지켜보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뭔가 불편함을 표현하면 왜 그런지 이유를 잘 살펴야 한다. 예전처럼 ‘그럼 안 돼! 그런 행동은 좋지 않아! 그러지 마!’라는 교육 방식은 의미 없는 매우 잘못된 교육 방식이다. 아이의 뜻을 살피고, 따라가고, 사랑하고, 칭찬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어른이 할 일이다. ‘잘못된 아이는 없고, 잘못된 부모만 있다.’라는 말은 진리다. 부모가 바른 언행을 하면 아이들은 부모를 거울삼아 배우고 따르며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삶의 행복은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모든 상황은 변한다. 자신도 변하고, 상대방도 변하고, 자신과 주변이 처한 상황도 변한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행복의 열쇠다. 변화의 과정에 수많은 갈등과 힘든 순간들을 맞이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고 익어가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이번 아이들의 방문을 통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예전의 불편함이 사라졌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가족의 행복을 느끼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평생 다시는 맞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나는 더 늙어가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슷한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일기일회(一期一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어가는 여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 태어남, 가족, 학교, 친구, 사회생활, 정체성과 갈등, 결혼, 양가의 식구들, 자식과 부모의 역할, 자식의 결혼과 새로운 식구들, 손주의 탄생, 조부모의 역할, 질병과 노화, 그리고 죽음.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다. 어느 누구도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고통만 더해질 뿐이다. 흐름과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게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변화시켜야 한다. 어떤 상황도 매 순간 변한다. 우리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뿐 지금 이 순간에도 몸과 마음, 생각이 계속 변하고 있다.

요즘 주변에서 부모님의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얘기를 자주 듣는다. 부모 간병으로 발생하는 부모-자식, 형제간, 부부간의 갈등 얘기도 듣는다. 새로운 상황을 접하면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변화는 혼란을 야기하지만, 그 혼란을 수용하면 새롭게 정돈된 세상이 열린다. 혼란을 수용하면 지혜롭게 방법을 찾게 되고, 그런 변화된 상황이 바로 새롭게 전개되는 정돈된 세상이 된다. 글로 또는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 수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수용과 자신의 변화만이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아이들 방문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일기일회이다.

지금 둘째 손주는 방에서 울고 있고, 딸은 화장실에 있고, 아내와 첫째 손녀는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거실 바닥은 이미 난장판이다. 이 글을 쓰다가 여러 번 멈추고 다시 쓰고 있다. 손녀와 놀아주기도 해야 하고, 손자 아이를 달래 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금 할 일은 글 쓰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환경의 변화로 내 삶의 방식이 변화되고 있고, 다행스럽게 잘 수용하며 적응하고 있다. 방법은 자신의 변화밖에 없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자신만 변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세상과 타인은 변하기도 어렵고 내가 변화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자신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다. 쉽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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