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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살아난 에릭센을 보면서 드는 생각
죽었다 살아난 에릭센을 보면서 드는 생각
어제 에릭센이 덴마크와 핀란드 경기 중에 갑자기 쓰러진 소식에 해외축구팬들 뿐만 아니라 축구관계자 모두가 멘붕 상태에 빠졌습니다. 토트넘, 아약스, 인터밀란 할 것 없이 모든 축구인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에릭센의 회복을 기원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냥 기절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으로 알았는데(실시간으로 경기를 보지는 않았거든요.) 알고 보니 심장이 완전히 정지했다가 CPR로 다시 살아난 것이기 때문에 에릭센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거였어요. 손흥민, 루카쿠 선수등이 경기 중에 세리머니로 에릭센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도 다시 생각해서 보니 죽었다 깨어난 사람에게 죽지 말고 계속 살아야 한다로 들리더군요. 영어로 간단하게 Stay strong(힘내라. 마음 단단히 먹고 강하게 버텨라)이라고 하지만 이번 일의 여파가 너무 커서 앞으로 에릭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를 것 같네요.
심장 전문의들이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에릭센은 축구선수로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합니다. 심장에 약간이라도 이상이 있을 경우 이탈리아에서는 엄격하게 선수생활을 금지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계약 기간이 얼마가 남았든 간에 이탈리아를 비롯해 그 어떤 축구 클럽에서도 에릭센이 뛰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축구계에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지금이라도 선수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겠죠. 저는 에릭센 여자친구(외국에서는 결혼을 안 해도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 우는 거 보고 에릭센 가족이 너무 불쌍했어요. 축구계에서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와서 죽은 선수들이 꽤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 전 골키퍼 카시야스는 골키퍼인데도(별로 많이 안 뛰는데도) 심장에 이상이 와서 선수생활 접었을 때 충격이었는데 에릭센은 미드필더이니 앞으로 축구선수로 못 뛰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
불행 중 다행인 건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쓰러졌기 때문에 팀닥터들이 빠르게 손을 쓸 수 있었고, 근처에 대학 병원도 있어서 빠르게 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일반인에게 심정지가 오면 80퍼센트 정도는 급사하는 경우가 많음.) 시몬 키예르가 기도 확보를 하고, 심판이 빠르게 판단을 해서 어떤 조치를 취했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에릭센을 살린 것은 팀닥터였다고 하죠. 그 팀 닥터가 "에릭센은 죽었었습니다."(He was gone)라고 했다고 하는데 저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인생 무상이 느껴졌어요. 아무리 바둥바둥 열심히 살아도 갑자기 한 순간에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지네요. 무엇을 위한 삶일까요? 만약에 에릭센이 5분 후에도 깨어나지 않았다면 에릭센 여친이랑 애기들은 한 순간에 가장을 잃은 채 살게 되는 거였죠.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저랑 동갑인데 벌써부터 유언장과 재산 분배 문제를 싹 정리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벌써부터 그런 걸 작성해 놓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번에 에릭센 심정지 사건이 터지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게 이해가 됩니다.(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에 따라서 유언장 내용도 계속해서 바뀌긴 합니다.) 아마 에릭센도 축구 경기중에 자기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갑자기 자기가 죽게 되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겠네요.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술 담배 일절 안 하고 피자조차 안 먹는 날강두 같은 선수들도 이번 일을 통해서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 깨달았을 겁니다.(물론 비수기에 피자 빵 등 온갖 군것질을 해서 포동포동해져서 돌아오는 선수도 있지만) 굳이 바둥바둥 살아갈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해치우자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암환자들이 간호사들에게 "~~~할 걸"이라고 하소연하는 거랑 같은 논리죠.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평소에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것들이 있다면 이것 저것 핑계대지 말고 오늘이라도 바로 실행에 옮기면서 삽시다. 애정 고백 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오늘이라도 당장 실행해 버리고, 먹고 싶었는데 계속 먹지 않은 음식이 있었다면 오늘 바로 가서 주문해서 드세요. 누구누구 때문에 눈치 보여서 못 했던 게 있다면 오늘부로 바로 실행해 버리세요. 다른 사람 신경써 가면서 살아갈 정도로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다시 태어난 에릭센 선수도 더 이상 축구선수라는 직업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었던 거 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차피 인테르에서 트로피도 들었고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적인 축구선수의 삶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잘은 모르지만 이번 일로 느끼는 바가 많은 분들이 많을 듯 하네요. 갑자기 감독 선임조차 못 하고 있는 토트넘의 사정 같은 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도 않고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시죠? 제가 그렇네요. 해리 케인 안 판다고 바득바득 우기고 있는 장사꾼 레비씨, 죽었다 살아난 에릭센한테 괜찮냐는 문자 하나 정도는 날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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