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결혼과 파국에 이른 불같은 사랑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두 번의 결혼과 파국에 이른 불같은 사랑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나는 단순한 연애만 할 수 없었고, 그것은 결혼이어야 했다”

“처음에는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알지 못했다. 나는 항상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고 그 사랑은 결혼과 동의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단순한 연애만 할 수 없었고, 그것은 결혼이어야 했다...”

1950년 첫 결혼 후 1991년 8번째 결혼까지 41년 동안 8번의 결혼식을 올렸던 리즈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사랑하고, 헤어진다고 얘기했지만, 그녀에게 연애는 곧 결혼이었다. 그녀의 삶에서 결혼은 중요한 주제였다.

그냥 연애만 하다 헤어질 수도 있는데, 왜 굳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영화계에서 2번째로 결혼을 많이 한 배우라는 명성 아닌 명성을 얻어야 했을까. 할리우드에서 결혼을 가장 많이 한 배우는 헝가리 출신 자자 가보르(1917-2016)로 9번 결혼했다니, 리즈로서는 1번째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내 생각에 리즈는 사랑의 완성을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애는 그냥 헤어지면 그만인 가벼운 관계였고, 자신은 그런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이크 토드와의 세 번째 결혼(출처-리즈 테일러 공식 홈페이지)

두 번째 이혼 후 리즈는 마이크 토드(1909~1958)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간격이 불과 이틀 밖에 안됐다고 한다. 영화 ‘80일 간의 세계일주’의 제작자였던 토드는 리즈의 이혼 소식이 들리자마자 토드는 그녀에게 자가용 비행기, 집 등을 바치며 구애했고, 리즈가 결혼결정을 내리기까지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토드는 리즈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까지 했다고 하니 참으로 물불 안가리고 사랑에 목숨 거는 남자라고 보여진다.

한편으로 리즈는 금사빠인 동시에 또 다른 금사빠라는 생각이 든다.‘금방 사랑에 빠지다’와 ‘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오다’의 성향을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불 같이 빠져들었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불과 이틀 만에 이뤄졌다는 세 번째 결혼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두 번째 남편인 마이클 와일딩과의 사랑에서 빠져나온 리즈가 새로운 남자인 마이크 토드와 금방 사랑에 빠진 결과라고 본다.

‘즉흥 결혼식’이라는 비난에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많은 사람들이 둘의 진정성을 믿지 않았지만, 리즈는 결혼생활에 무척 만족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이크 토드의 사망을 다룬 신문기사(출처-리즈 테일러 공식 홈페이지)

1958년, 마이크는 개인 비행기를 몰고 뉴욕의 한 시상식장에 가던 중에 추락해 사망했다. 원래 이 행사에 부부가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리즈가 갑자기 몸이 아파서 토드만 떠났다고 한다. 리즈는 토드와의 사이에 딸을 두었다.

이제 또 하나의 막장 스토리가 등장할 차례다. 토드 사망 후 리즈와 한 침대를 쓰게 된 남자는 당시 프랭크 시나트라와 쌍벽을 이루던 인기 가수 에디 피셔였다. 그런데...에디 피셔로 말하자면 리즈의 세 번째 남편이었던 마이크 토드의 친구이자 리즈 본인의 친구인 배우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이었다. 전(前) 남편이 아닌 그 당시 현(現) 남편이었다.

에디 피셔와의 네 번째 결혼(출처-리즈 테일러 공식 홈페이지)

마이크 토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의에 빠진 리즈를 친구인 데비 레이놀즈와 그 남편인 에디 피셔가 가까이서 위로했다. 그러다가 리즈와 에디가 서로 눈이 맞은 것이다. 불륜에 레벨이 있겠나마는, 친구의 남편과 바람이 난, 그것도 남편을 잃은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하던 절친의 가정을 깨뜨린 리즈는 최악의 불륜을 저지른 셈이다.

데비 레이놀즈와 에디 피셔는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다고 한다. 리즈와 에디가 자주 만나자 주변에서는 둘 사이를 우려했는데, 데비는 “리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고, 에디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두 명이 자주 만나는 게 무슨 큰 일인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데, 그 가장 사랑하는 사람 두 명에게서 배신을 당했으니 이거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바로 그 기막힌 상황인 것이다.

에디 피셔, 데비 레이놀즈 부부와의 다정했던 시절(출처-네이버 포스트}

리즈에게 ‘가정 파괴범’, ‘망할 계집’등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웬만한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폭풍이 불어닥쳤으나 리즈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평생 혼자 자란 말이야?”라고 응수했다고 하니 보통 강심장이 아닌 여자였다. 아니면 사랑에 용감한 여자라고 해야 하나.

1959년, 리즈는 결국 에디 피셔와 4번째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영화 버터필드8(1960)에 함께 출연했다. 리즈는 고급 창녀로, 에디는 리즈를 사랑하는 남자 역할이었다. 이 영화는 리즈에게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영화 ‘버터필드8’(출처-리즈 테일러 공식 홈페이지)

사실 에디 피셔도 리즈 못지않은 바람둥이였다. 여러 여자들을 통해 사생아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결혼생활이 어땠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최악의 불륜 스캔들은 곧 최악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결혼 후 에디는 리즈의 돈을 물 쓰듯이 했고, 심지어 섹스 파티까지 벌이기까지 했다. “저 사람은 미쳤고, 나도 미쳤다. 우린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이 실패한 결혼에 대한 리즈의 고백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한지 5년 만인 1964년 이혼했다. 에디 피셔는 지난 1999년 출간한 자서전 에서 자신의 아내였던 데비 레이놀즈와 리즈를 비난했다. 그는 데비에 대해 “우리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엉터리였다”고 말했고, 리즈에 대해서는 “천사의 얼굴에 트럭 운전사의 도덕성을 가진 여자”라고 악담을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뒤끝 작렬이고, 이런 소인배가 없을 듯싶다.

그에 비하면 데비 레이놀즈는 성격이 좋은 편이다. 훗날 리즈는 사망하기 얼마 전 데비와 화해를 했다고 한다. 그 얼마 후 데비는 리즈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나의 남편(에디 피셔)을 포함해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그녀를 숭배했다”고 말했다.

리즈는 사랑을 얻기 위해 불륜도 서슴치 않았다. 세 번째 남편인 마이클 토드는 리즈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했다고 하니 두 사람은 토드가 이혼하기 전에 불륜을 저지른 것이고, 친구의 남편 에디 피셔와 불륜 끝에 네 번째 결혼을 하더니 이번에는 역시 친구인 시빌 윌리암스의 남편인 배우 리처드 버튼과 바람이 났다.

드디어...리즈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남자가 등장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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